J Innov Med Technol 2023; 1(1): 1-4
Published online November 30, 2023
https://doi.org/10.61940/jimt.230001
© Korean Innovative Medical Technology Society
문정섭, 유승정, 지삼룡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부산백병원 내과학교실
Correspondence to : Jeong Seop Moon
Department of Internal Medicine, Busan Paik Hospital, Inj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75 Bokji-ro, Busanjin-gu, Busan 47392, Korea
e-mail moonjs22@naver.com
https://orcid.org/0000-0002-5909-8159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ndoscopy is an examination method that uses an endoscope to observe the inside of the body. The history of endoscopy dates to Greek and Roman times, and even at that time, the inside of the body was observed using a speculum, and the record of the rectal examination of Hippocrates can be seen. Endoscopy started with a rigid endoscope, developed into a semi-rigid endoscope, and a flexible endoscope. Since then, the development of electronic endoscopes, various treatments using endoscopes, and recently capsule endoscopes have been developed, and the use of artificial intelligence has been in the spotlight. In the era of advanced endoscopy in 21st century, it would be meaningful to point out the history of endoscope development so far. Endoscopy began as a simple metal cylinder, but gradually evolved from rigid to flexible and with the constant improvement of light transmission systems and lenses into the high-definition and excellent diagnostic and therapeutic instruments that it is today.
Keywords Endoscopy history
내시경 검사(endoscopy)는 내시경(endoscope)을 이용하여 신체 내부를 육안으로 관찰하는 검사법이다. 내시경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에도 벌리개(speculum)를 이용하여 몸 내부를 관찰하였다1. 내시경은 딱딱한 경성 내시경(rigid endoscope)에서 시작하여, 반경성(semi-rigid endoscope), 연성 내시경(flexible endoscope)으로 발전하였다. 그 이후 전자 내시경의 개발과 내시경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 최근에는 캡슐내시경까지 개발되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활용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 내시경은 처음에는 간단한 금속제 원통으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경성에서 연성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빛 전달 시스템과 렌즈의 개선으로 현재와 같은 고화질의 훌륭한 진단 및 치료 기구로 발전하였다.
사람 몸 내부를 관찰한 초기 기록은 그리스, 로마 시대로 이때 벌리개를 이용하여 오일램프나 초의 빛을 거울에 반사하여 몸 내부를 관찰하였다. 의성 히포크라테스(460–377 BC)의 직장경 검사 기록이 있고, 폼페이 유적(AD 79)에서는 관을 점차 넓힐 수 있는 확장용 벌리개가 발견되었다. 자궁 경부를 거울을 이용하여 벌리개로 처음 관찰한 의사는 아랍 외과 의사 Abu Al Qasim Al Zahrawi (AD 936–1013)였다1. 하지만 이후 19세기 초까지는 내시경의 큰 발전이나 진전이 없었다.
독일 비뇨기과 의사 Philipp Bozzini (1773–1809)는 1805년 촛불을 은거울에 반사시키는 새로운 빛 전도 시스템 Lichtleiter을 개발하여 경성 내시경의 시대를 열었다1,2. Bozzini는 여러 모양과 크기의 벌리개를 기기 선단에 장착, 교환하여 여성의 방광, 직장, 상부기도 등을 관찰하였다1,2. 이것이 근대 경성 내시경의 시초이다. 1826년 프랑스의 Pierre Salomon Segalas는 Bozzini 내시경을 개량한 urethra-cystique라는 벌리개를 개발하였다. Urethra-cystique는 안전하게 삽입되기 위해 gum elastic catheter와 함께 사용되었다. 1년 후 미국의 John Fisher는
소화기 분야에서 경성 내시경의 개발은 1868년 Adolf Kussmaul이 금속제의 긴 경성 위내시경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잘 안 보이는 Desormeaux 램프를 이용하였지만 새로운 위내시경 시대를 열었으며 이후 전기 램프가 개발되면서 화질은 개선되었다. 비엔나의 Joseph Leiter는 비뇨기과 의사인 Maximallian Nitze와 1870년 플래티넘 필라멘트 램프와 냉각 시스템을 갖춘 방광내시경을 만들었고 1879년 같은 방법으로 원시적인 위내시경을 개발하였다. 한편 Carl Stoerk와 Freidrich Semleder는 식도 내시경을 만들었으나 어두운 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Leiter는 이후 폴란드 의사 Johannes von Mikulicz와 광원을 내시경 앞에 위치시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후 Mikulicz는 식도내시경과 위내시경을 만들었으나 시술 전 전신마취와 큰 배터리의 운반은 여전히 문제점이었다.
1885년 비엔나 국제전기박람회에서 Leiter는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 램프를 내시경에 도입하여 발표하였다. 1896년 Theodore Rosenheim은 삼관위내시경(triple-tube gastroscope)을 발표하였다. 세 개의 관은 안쪽부터 렌즈, 물냉각 방식 플래티넘 램프, 측정자(outer tube with a scale of measurement)로 이루어져 있다.
경성 위내시경은 위에서 일부 관찰이 어려운 부위가 존재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1.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1898년 Kelling은 내시경 선단부가 철사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위내시경을 개발하였다. 1911년 Elsner는 삼관위내시경 삽입부에 고무로 만든 안전장치를 추가하였으며 이 형태는 20년간 위내시경의 근간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뮌헨에서는 Michael Hoffman이 휘어진 관 안에 프리즘과 렌즈를 장착하여 빛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선보여 시기적으로 반경성 내시경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20년 Rudolf Schindler는 10년 전에 개발된 Elsner 내시경에 송기 기능을 추가하여 내시경 도중 렌즈가 뿌옇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내관 안에 고무 선단을 장착하여 안전하게 내시경을 삽입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하였다. Schindler는 연구를 계속하여 1932년 내시경 선단 1/3이 나선형의 청동과 고무 피복으로 이루어진 반경성 내시경을 개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 내시경은 단초점 렌즈를 사용하고 34도까지 사방 회전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5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Schindler는 내시경 개발 외에도 많은 학문 업적을 남겼기에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뮌헨을 방문하여 뮌헨은 내시경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담으로 Schindler의 부인 Gabrielle Winkler는 미모와 침착한 어조로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환자 머리를 내시경하기 좋도록 수시로 변경하는 등 보조자 역할에 능숙했다고 하며, 때문에 Schindler는 부인이 없을 때에는 아예 내시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유태인이었던 Schindler는 독일에서 반나치죄로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동료 의사들의 탄원으로 풀려날 수 있었고, 풀려난 후 미국 시카고로 이주하여 이후 시카고는 내시경 학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1941년 영국의 Hermon Taylor는 굵고 내시경 근위부가 더 잘 휠 수 있는 내시경을 개발하여 위에서 안 보이는 부위를 없앨 수 있었다. 1949년 Edler 회사는 접안 확대렌즈를 장착한 내시경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반경성 내시경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1.
1927년 독일과 영국에서 유리섬유를 이용한 빛 전도 연구가 시작되었다.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 개발에는 세 번의 중요한 점심 식사가 있었다고 한다1. 1954년 영국에서 심장 의사 Timothy Counihan과 소화기 의사 Keith Henley가 식사를 하면서 최근 Nature지에 실린 광섬유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때 Henley는 소화기 영역에서 광섬유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Henley는 미국 미시간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곳에서 근무하던 소화기 펠로우 Basil Hirschwitz와 식사를 하다가 Hirschwitz가 그 당시 진행하던 위 미니어처 카메라(miniature camera)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Nature지에 실린 광섬유 논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Hirschwitz는 바로 광섬유 논문의 저자인 Kapany에게 연락을 하여 다음 주 런던에서 그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논문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Kapany의 지도교수 Hopkin은 이후 광섬유가 360도로 꺾여도 영상이 왜곡 없이 전달되는 직경 0.025 inch의 유리섬유 코팅 기술을 확립하였다. Hirschwitz는 영국 Fiberglass사의 광섬유 시제품을 가지고 미국 Ann Arbour로 돌아와 물리학 교수인 Charles Wilbur Peters와 공동 연구를 시작하여 1956년 광섬유에서 빛 누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1년 후 방수 기능이 있는 광섬유 연성 내시경을 개발하였다. 먼저 본인이 이 내시경을 삼켰고 1주 후에 성공적으로 환자에게 내시경을 시행하여 새로운 연성 내시경이 탄생하였다1. 그리고 1957년 미국위내시경학회(American Gastroscopy Society)에서 Hirschwitz는 연성 내시경 시제품을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는 반경성 내시경을 개발한 Rudolf Schindler도 참석하여 이전의 광섬유 빛 전달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1960년 미국 ACMI 회사에서 최초의 상업적 위내시경을 출시하였다. 1962년에는 ACMI 회사에서 Robert Kemp 의사의 아이디어를 따라 선단 조절이 가능한 내시경을 출시하였다. 1962년부터 1972년 사이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현재와 같은 여러 기능을 가진 내시경을 개발 출시하였다1,3.
1930년부터 위 사진을 직접 찍으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첫 가스트로카메라(gastrocamera)는 1954년 일본의 Uji에 의해 실현되었다4. 1963년 일본에서는 800개 이상의 병원에서 가스트로카메라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 카메라는 금속 선단에 소형 텅스텐 플래시와 렌즈(F 1:1.7, f=3.6 mm)를 장착하고 선단 끝에 송기가 가능한 공기 밸브가 있었다. 필름은 Anscochrome 텅스텐 타입, 폭 5 mm 길이 300 mm로 매가진에 담겨 있어 32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연결관은 부드럽게 만들었고 필름장전 유도선, 선단조정 유도선, 램프에 연결되는 전선이 관 안에 들어 있으며. 선단은 모든 방향으로 35도까지 구부릴 수 있었다. 내시경과 다른 점은 위를 보면서 촬영을 할 수 없어 방을 어둡게 하고 복벽에 비치는 가스트로카메라의 빛을 보면서 위치를 잡고 위를 촬영하였다. 렌즈의 화각은 80도이며 위벽과 40 mm 떨어지면 직경 70 mm의 면적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당시 X-레이 촬영에 비하여 작은 위암, 궤양, 위염, 출혈 병소를 찾는 데 유리하였다. 하지만 가스트로카메라는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의 개발로 곧 대체되었고 사진도 이후 접안렌즈에 끼우는 일반 35 mm 카메라로 촬영하게 되었다4.
1983년 미국 Welch Alleyn사에서 처음으로 전자 내시경을 개발하였다. 전자내시경은 내시경 선단에 광세포감지(photocell receptor) 전기 센서를 장착하여 화상을 비디오 프로세서(video processor)로 전달하여 모니터에 나타내었다. 모니터에 내시경상이 보이므로 여러 명이 같이 볼 수 있어 이후 내시경 의사와 간호사 수련에 큰 발전이 있었다. 1980년에는 일본 올림푸스 사에 의해 내시경 선단에 초음파탐촉자를 장착한 초음파내시경이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내시경상 전달에 광섬유를 이용하였으나 곧 전자내시경으로 대체되었다. 초음파내시경은 초음파 주사면에 따라 방사형과 직립형이 있으며, 직립형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조직검사와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1,2,5.
소화기내시경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소장의 관찰은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소장을 관찰하기 위하여 길이가 더 긴 소장내시경이 개발되었다. 소장내시경 밀기법으로 공장까지는 관찰이 가능하지만 그 이하는 어려워 Sode법이나 Ropeway법을 이용하였으나 시술이 어렵고 환자의 고통이 따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캡슐내시경 개발은 이전부터 축적된 사람들의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접목으로 시작되었다. 1966년 Issac Asimov의 소설 Fantastic Voyage에서는 작게 축소된 사람들이 소련 과학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뇌혈전증을 보면서 레이저로 제거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 황당한 공상 과학 소설이지만 캡슐내시경 개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또한 1987년 Stiven Spilberg 감독의 영화 Innerspace 역시 축소된 사람들이 작은 캡슐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무선으로 바깥세상과 교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캡슐내시경의 작동 원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1947년에 개발된 트랜지스터 발명은 전자 장치의 극소형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캡슐내시경의 개발은 미사일 유도에 필요한 전자눈 장치 연구가 근간이 되었다. 1981년 이스라엘 국방성의 미사일에 사용하는 전자눈 개발부서의 Gavriel Iddan 박사는 미국에서 안식년 동안 영상 연구를 하던 중 소화기 의사 Eitan Scapa와 이야기를 하다가 쉽게 삼킬 수 있고 장을 통과하며 영상을 몸 밖으로 보내줄 수 있는 소형 미사일에 대한 개발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Iddan 박사는 동물 실험을 통한 영상 전송에 관한 연구로 1994년 1월에 캡슐내시경에 관한 첫 번째 특허를 제출하였다6. 이즈음 Iddan의 연구와 무관하게 영국의 Dr. Paul Swain은 1994년 9월 로스앤젤레스 세계소화기학회(Gastroenterology World Congress)에서 무선 내시경의 가능성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Dr. Swain은 1996년 전자결합소자(charged coupled device)를 이용한 무선 내시경으로 살아있는 돼지 위에서 체외로 영상을 전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7년 9월 캡슐내시경의 미국 특허가 승인되어 마침내 캡슐내시경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Iddan 박사는 캡슐내시경을 상업화하여 Given사를 설립하였다 1998년 말 지금까지 영국과 이스라엘에서 따로 이루어지던 캡슐내시경 연구가 통합되어 Gavriel Iddan, Paul Swain, Arkady Glukhovski 팀의 캡슐내시경의 꿈이 실현되었다. 이후 1999년 1월에는 캡슐 사이즈, 영상전송파워, 배터리 용량, 화질 등의 기술적인 장애물이 모두 극복되었고 1999년 8월에는 Dr. Paul Swain이 직접 첫 번째 캡슐내시경을 삼켜 검사의 안전성을 증명하였다. 2000년 5월 미국 소화기학회에서 Dr. Swain은 Given사의 캡슐내시경을 이용한 동물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고 정상인 10명에 대한 검사 결과를 처음으로 Nature지에 보고하였다6-8.
1960년대 경성 복강경 분야에서 영국의 Harold Hopkins와 독일의 Karl Storz는 현대 복강경 기술과 수술의 토대를 만들었다. 1967년 막대-렌즈 광학시스템(the rod-lens optical system)과 저온 광섬유 번들을 이용하여 선명한 복강경 컬러 이미지를 구현하였다. 또한 독일의 Kurt Semm은 매듭 형성, 루프 어플리케이터, 고용량 세척 및 흡입 장비와 같은 복강경 주요 액세서리를 개발하였다. 동시에 그는 1980년에 복강경 충수 절제술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또 다른 독일 외과의사 Erich Muhe는 1985년에 최초의 복강경 담낭 절제술을 시행하였다2. 1990년에 자동으로 전진하는 복강경 클립(laparoscopic clip applier with automatically advancing clip)이 개발되었고 스테이플러도 개발되어 더 복잡한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 수술과 비교할 때 동등하거나 더 나은 장기 결과, 더 작은 절개로 인한 환자 이환율 감소, 더 짧은 입원 기간 및 더 짧은 환자 회복 시간의 결과를 나타내었다. 현재 복강경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는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에 연결된 Hopkins와 Storz가 개발한 경성 텔레스코픽 로드 렌즈 시스템(telescopic rod lens system)으로 조작이 쉽고 해상도와 이미지 품질이 우수하다. 1994년에는 최초의 로봇 수술 장비가 FDA의 승인을 받았다(Automated Endoscopic System for Optimal Positioning, AESOP)9. 현재는 로봇 시스템을 통해 외과의는 몇 개의 작은 절개로만으로, 확대 3D 고화질 영상 시스템을 보면서, 인간의 손보다 훨씬 더 많이 구부려지고 회전할 수 있는 작은 손목 기구를 사용하여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2.
고대 시대부터 사람 몸 안을 관찰하고 치료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는 소화기 내시경 미소침습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내시경의 개발은 약 2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시경은 경성 내시경, 반경성 내시경, 가스트로카메라, 연성 내시경 과정을 거쳐 현재 사용하는 전자내시경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사용하는 내시경의 근간이 되는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가 약 육십 년 전에 개발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내시경 진단과 치료의 발전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이 빠르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내시경을 이용한 미소침습수술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한 다양한 진단, 치료들 그리고 여러 기능이 추가되는 캡슐내시경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내시경의 개발 과정 및 발전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내시경 시대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None.
J Innov Med Technol 2023; 1(1): 1-4
Published online November 30, 2023 https://doi.org/10.61940/jimt.230001
Copyright © Korean Innovative Medical Technology Society.
문정섭, 유승정, 지삼룡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부산백병원 내과학교실
Jeong Seop Moon , Seung Jung Yu , Sam Ryong Jee
Department of Internal Medicine, Busan Paik Hospital, Inj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Busan, Korea
Correspondence to:Jeong Seop Moon
Department of Internal Medicine, Busan Paik Hospital, Inj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75 Bokji-ro, Busanjin-gu, Busan 47392, Korea
e-mail moonjs22@naver.com
https://orcid.org/0000-0002-5909-8159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ndoscopy is an examination method that uses an endoscope to observe the inside of the body. The history of endoscopy dates to Greek and Roman times, and even at that time, the inside of the body was observed using a speculum, and the record of the rectal examination of Hippocrates can be seen. Endoscopy started with a rigid endoscope, developed into a semi-rigid endoscope, and a flexible endoscope. Since then, the development of electronic endoscopes, various treatments using endoscopes, and recently capsule endoscopes have been developed, and the use of artificial intelligence has been in the spotlight. In the era of advanced endoscopy in 21st century, it would be meaningful to point out the history of endoscope development so far. Endoscopy began as a simple metal cylinder, but gradually evolved from rigid to flexible and with the constant improvement of light transmission systems and lenses into the high-definition and excellent diagnostic and therapeutic instruments that it is today.
Keywords: Endoscopy history
내시경 검사(endoscopy)는 내시경(endoscope)을 이용하여 신체 내부를 육안으로 관찰하는 검사법이다. 내시경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에도 벌리개(speculum)를 이용하여 몸 내부를 관찰하였다1. 내시경은 딱딱한 경성 내시경(rigid endoscope)에서 시작하여, 반경성(semi-rigid endoscope), 연성 내시경(flexible endoscope)으로 발전하였다. 그 이후 전자 내시경의 개발과 내시경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 최근에는 캡슐내시경까지 개발되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활용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 내시경은 처음에는 간단한 금속제 원통으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경성에서 연성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빛 전달 시스템과 렌즈의 개선으로 현재와 같은 고화질의 훌륭한 진단 및 치료 기구로 발전하였다.
사람 몸 내부를 관찰한 초기 기록은 그리스, 로마 시대로 이때 벌리개를 이용하여 오일램프나 초의 빛을 거울에 반사하여 몸 내부를 관찰하였다. 의성 히포크라테스(460–377 BC)의 직장경 검사 기록이 있고, 폼페이 유적(AD 79)에서는 관을 점차 넓힐 수 있는 확장용 벌리개가 발견되었다. 자궁 경부를 거울을 이용하여 벌리개로 처음 관찰한 의사는 아랍 외과 의사 Abu Al Qasim Al Zahrawi (AD 936–1013)였다1. 하지만 이후 19세기 초까지는 내시경의 큰 발전이나 진전이 없었다.
독일 비뇨기과 의사 Philipp Bozzini (1773–1809)는 1805년 촛불을 은거울에 반사시키는 새로운 빛 전도 시스템 Lichtleiter을 개발하여 경성 내시경의 시대를 열었다1,2. Bozzini는 여러 모양과 크기의 벌리개를 기기 선단에 장착, 교환하여 여성의 방광, 직장, 상부기도 등을 관찰하였다1,2. 이것이 근대 경성 내시경의 시초이다. 1826년 프랑스의 Pierre Salomon Segalas는 Bozzini 내시경을 개량한 urethra-cystique라는 벌리개를 개발하였다. Urethra-cystique는 안전하게 삽입되기 위해 gum elastic catheter와 함께 사용되었다. 1년 후 미국의 John Fisher는
소화기 분야에서 경성 내시경의 개발은 1868년 Adolf Kussmaul이 금속제의 긴 경성 위내시경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잘 안 보이는 Desormeaux 램프를 이용하였지만 새로운 위내시경 시대를 열었으며 이후 전기 램프가 개발되면서 화질은 개선되었다. 비엔나의 Joseph Leiter는 비뇨기과 의사인 Maximallian Nitze와 1870년 플래티넘 필라멘트 램프와 냉각 시스템을 갖춘 방광내시경을 만들었고 1879년 같은 방법으로 원시적인 위내시경을 개발하였다. 한편 Carl Stoerk와 Freidrich Semleder는 식도 내시경을 만들었으나 어두운 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Leiter는 이후 폴란드 의사 Johannes von Mikulicz와 광원을 내시경 앞에 위치시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후 Mikulicz는 식도내시경과 위내시경을 만들었으나 시술 전 전신마취와 큰 배터리의 운반은 여전히 문제점이었다.
1885년 비엔나 국제전기박람회에서 Leiter는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 램프를 내시경에 도입하여 발표하였다. 1896년 Theodore Rosenheim은 삼관위내시경(triple-tube gastroscope)을 발표하였다. 세 개의 관은 안쪽부터 렌즈, 물냉각 방식 플래티넘 램프, 측정자(outer tube with a scale of measurement)로 이루어져 있다.
경성 위내시경은 위에서 일부 관찰이 어려운 부위가 존재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1.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1898년 Kelling은 내시경 선단부가 철사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위내시경을 개발하였다. 1911년 Elsner는 삼관위내시경 삽입부에 고무로 만든 안전장치를 추가하였으며 이 형태는 20년간 위내시경의 근간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뮌헨에서는 Michael Hoffman이 휘어진 관 안에 프리즘과 렌즈를 장착하여 빛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선보여 시기적으로 반경성 내시경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20년 Rudolf Schindler는 10년 전에 개발된 Elsner 내시경에 송기 기능을 추가하여 내시경 도중 렌즈가 뿌옇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내관 안에 고무 선단을 장착하여 안전하게 내시경을 삽입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하였다. Schindler는 연구를 계속하여 1932년 내시경 선단 1/3이 나선형의 청동과 고무 피복으로 이루어진 반경성 내시경을 개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 내시경은 단초점 렌즈를 사용하고 34도까지 사방 회전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5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Schindler는 내시경 개발 외에도 많은 학문 업적을 남겼기에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뮌헨을 방문하여 뮌헨은 내시경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담으로 Schindler의 부인 Gabrielle Winkler는 미모와 침착한 어조로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환자 머리를 내시경하기 좋도록 수시로 변경하는 등 보조자 역할에 능숙했다고 하며, 때문에 Schindler는 부인이 없을 때에는 아예 내시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유태인이었던 Schindler는 독일에서 반나치죄로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동료 의사들의 탄원으로 풀려날 수 있었고, 풀려난 후 미국 시카고로 이주하여 이후 시카고는 내시경 학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1941년 영국의 Hermon Taylor는 굵고 내시경 근위부가 더 잘 휠 수 있는 내시경을 개발하여 위에서 안 보이는 부위를 없앨 수 있었다. 1949년 Edler 회사는 접안 확대렌즈를 장착한 내시경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반경성 내시경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1.
1927년 독일과 영국에서 유리섬유를 이용한 빛 전도 연구가 시작되었다.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 개발에는 세 번의 중요한 점심 식사가 있었다고 한다1. 1954년 영국에서 심장 의사 Timothy Counihan과 소화기 의사 Keith Henley가 식사를 하면서 최근 Nature지에 실린 광섬유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때 Henley는 소화기 영역에서 광섬유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Henley는 미국 미시간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곳에서 근무하던 소화기 펠로우 Basil Hirschwitz와 식사를 하다가 Hirschwitz가 그 당시 진행하던 위 미니어처 카메라(miniature camera)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Nature지에 실린 광섬유 논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Hirschwitz는 바로 광섬유 논문의 저자인 Kapany에게 연락을 하여 다음 주 런던에서 그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논문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Kapany의 지도교수 Hopkin은 이후 광섬유가 360도로 꺾여도 영상이 왜곡 없이 전달되는 직경 0.025 inch의 유리섬유 코팅 기술을 확립하였다. Hirschwitz는 영국 Fiberglass사의 광섬유 시제품을 가지고 미국 Ann Arbour로 돌아와 물리학 교수인 Charles Wilbur Peters와 공동 연구를 시작하여 1956년 광섬유에서 빛 누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1년 후 방수 기능이 있는 광섬유 연성 내시경을 개발하였다. 먼저 본인이 이 내시경을 삼켰고 1주 후에 성공적으로 환자에게 내시경을 시행하여 새로운 연성 내시경이 탄생하였다1. 그리고 1957년 미국위내시경학회(American Gastroscopy Society)에서 Hirschwitz는 연성 내시경 시제품을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는 반경성 내시경을 개발한 Rudolf Schindler도 참석하여 이전의 광섬유 빛 전달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1960년 미국 ACMI 회사에서 최초의 상업적 위내시경을 출시하였다. 1962년에는 ACMI 회사에서 Robert Kemp 의사의 아이디어를 따라 선단 조절이 가능한 내시경을 출시하였다. 1962년부터 1972년 사이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현재와 같은 여러 기능을 가진 내시경을 개발 출시하였다1,3.
1930년부터 위 사진을 직접 찍으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첫 가스트로카메라(gastrocamera)는 1954년 일본의 Uji에 의해 실현되었다4. 1963년 일본에서는 800개 이상의 병원에서 가스트로카메라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 카메라는 금속 선단에 소형 텅스텐 플래시와 렌즈(F 1:1.7, f=3.6 mm)를 장착하고 선단 끝에 송기가 가능한 공기 밸브가 있었다. 필름은 Anscochrome 텅스텐 타입, 폭 5 mm 길이 300 mm로 매가진에 담겨 있어 32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연결관은 부드럽게 만들었고 필름장전 유도선, 선단조정 유도선, 램프에 연결되는 전선이 관 안에 들어 있으며. 선단은 모든 방향으로 35도까지 구부릴 수 있었다. 내시경과 다른 점은 위를 보면서 촬영을 할 수 없어 방을 어둡게 하고 복벽에 비치는 가스트로카메라의 빛을 보면서 위치를 잡고 위를 촬영하였다. 렌즈의 화각은 80도이며 위벽과 40 mm 떨어지면 직경 70 mm의 면적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당시 X-레이 촬영에 비하여 작은 위암, 궤양, 위염, 출혈 병소를 찾는 데 유리하였다. 하지만 가스트로카메라는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의 개발로 곧 대체되었고 사진도 이후 접안렌즈에 끼우는 일반 35 mm 카메라로 촬영하게 되었다4.
1983년 미국 Welch Alleyn사에서 처음으로 전자 내시경을 개발하였다. 전자내시경은 내시경 선단에 광세포감지(photocell receptor) 전기 센서를 장착하여 화상을 비디오 프로세서(video processor)로 전달하여 모니터에 나타내었다. 모니터에 내시경상이 보이므로 여러 명이 같이 볼 수 있어 이후 내시경 의사와 간호사 수련에 큰 발전이 있었다. 1980년에는 일본 올림푸스 사에 의해 내시경 선단에 초음파탐촉자를 장착한 초음파내시경이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내시경상 전달에 광섬유를 이용하였으나 곧 전자내시경으로 대체되었다. 초음파내시경은 초음파 주사면에 따라 방사형과 직립형이 있으며, 직립형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조직검사와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1,2,5.
소화기내시경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소장의 관찰은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소장을 관찰하기 위하여 길이가 더 긴 소장내시경이 개발되었다. 소장내시경 밀기법으로 공장까지는 관찰이 가능하지만 그 이하는 어려워 Sode법이나 Ropeway법을 이용하였으나 시술이 어렵고 환자의 고통이 따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캡슐내시경 개발은 이전부터 축적된 사람들의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접목으로 시작되었다. 1966년 Issac Asimov의 소설 Fantastic Voyage에서는 작게 축소된 사람들이 소련 과학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뇌혈전증을 보면서 레이저로 제거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 황당한 공상 과학 소설이지만 캡슐내시경 개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또한 1987년 Stiven Spilberg 감독의 영화 Innerspace 역시 축소된 사람들이 작은 캡슐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무선으로 바깥세상과 교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캡슐내시경의 작동 원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1947년에 개발된 트랜지스터 발명은 전자 장치의 극소형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캡슐내시경의 개발은 미사일 유도에 필요한 전자눈 장치 연구가 근간이 되었다. 1981년 이스라엘 국방성의 미사일에 사용하는 전자눈 개발부서의 Gavriel Iddan 박사는 미국에서 안식년 동안 영상 연구를 하던 중 소화기 의사 Eitan Scapa와 이야기를 하다가 쉽게 삼킬 수 있고 장을 통과하며 영상을 몸 밖으로 보내줄 수 있는 소형 미사일에 대한 개발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Iddan 박사는 동물 실험을 통한 영상 전송에 관한 연구로 1994년 1월에 캡슐내시경에 관한 첫 번째 특허를 제출하였다6. 이즈음 Iddan의 연구와 무관하게 영국의 Dr. Paul Swain은 1994년 9월 로스앤젤레스 세계소화기학회(Gastroenterology World Congress)에서 무선 내시경의 가능성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Dr. Swain은 1996년 전자결합소자(charged coupled device)를 이용한 무선 내시경으로 살아있는 돼지 위에서 체외로 영상을 전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7년 9월 캡슐내시경의 미국 특허가 승인되어 마침내 캡슐내시경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Iddan 박사는 캡슐내시경을 상업화하여 Given사를 설립하였다 1998년 말 지금까지 영국과 이스라엘에서 따로 이루어지던 캡슐내시경 연구가 통합되어 Gavriel Iddan, Paul Swain, Arkady Glukhovski 팀의 캡슐내시경의 꿈이 실현되었다. 이후 1999년 1월에는 캡슐 사이즈, 영상전송파워, 배터리 용량, 화질 등의 기술적인 장애물이 모두 극복되었고 1999년 8월에는 Dr. Paul Swain이 직접 첫 번째 캡슐내시경을 삼켜 검사의 안전성을 증명하였다. 2000년 5월 미국 소화기학회에서 Dr. Swain은 Given사의 캡슐내시경을 이용한 동물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고 정상인 10명에 대한 검사 결과를 처음으로 Nature지에 보고하였다6-8.
1960년대 경성 복강경 분야에서 영국의 Harold Hopkins와 독일의 Karl Storz는 현대 복강경 기술과 수술의 토대를 만들었다. 1967년 막대-렌즈 광학시스템(the rod-lens optical system)과 저온 광섬유 번들을 이용하여 선명한 복강경 컬러 이미지를 구현하였다. 또한 독일의 Kurt Semm은 매듭 형성, 루프 어플리케이터, 고용량 세척 및 흡입 장비와 같은 복강경 주요 액세서리를 개발하였다. 동시에 그는 1980년에 복강경 충수 절제술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또 다른 독일 외과의사 Erich Muhe는 1985년에 최초의 복강경 담낭 절제술을 시행하였다2. 1990년에 자동으로 전진하는 복강경 클립(laparoscopic clip applier with automatically advancing clip)이 개발되었고 스테이플러도 개발되어 더 복잡한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 수술과 비교할 때 동등하거나 더 나은 장기 결과, 더 작은 절개로 인한 환자 이환율 감소, 더 짧은 입원 기간 및 더 짧은 환자 회복 시간의 결과를 나타내었다. 현재 복강경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는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에 연결된 Hopkins와 Storz가 개발한 경성 텔레스코픽 로드 렌즈 시스템(telescopic rod lens system)으로 조작이 쉽고 해상도와 이미지 품질이 우수하다. 1994년에는 최초의 로봇 수술 장비가 FDA의 승인을 받았다(Automated Endoscopic System for Optimal Positioning, AESOP)9. 현재는 로봇 시스템을 통해 외과의는 몇 개의 작은 절개로만으로, 확대 3D 고화질 영상 시스템을 보면서, 인간의 손보다 훨씬 더 많이 구부려지고 회전할 수 있는 작은 손목 기구를 사용하여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2.
고대 시대부터 사람 몸 안을 관찰하고 치료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는 소화기 내시경 미소침습수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내시경의 개발은 약 2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시경은 경성 내시경, 반경성 내시경, 가스트로카메라, 연성 내시경 과정을 거쳐 현재 사용하는 전자내시경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사용하는 내시경의 근간이 되는 가스트로화이버스코프가 약 육십 년 전에 개발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내시경 진단과 치료의 발전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이 빠르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내시경을 이용한 미소침습수술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초음파내시경을 이용한 다양한 진단, 치료들 그리고 여러 기능이 추가되는 캡슐내시경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내시경의 개발 과정 및 발전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내시경 시대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None.